무언가를 만드는 이와 그것을 평하는 이를 같은 위치에 놓을 수는 없다. 엄밀히 말해 후자가 전자보다는 몇 단계 낮은 급이니까. 건전한 비평도 물론 필요한 것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과 그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다. 하지만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많은 이들이 '너무 쉽게' 코멘트를 남긴다. 요즘 따라 TV에 자주 등장하는 평론가들도 마찬가지다. 과격하고 극단적인 표현을 할수록 통렬하다는 이유로 인기를 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순전히 나만의 기준으로 그 귀천을 따진다면, 소위 평론가라는 이들은 저기 밑바닥 즈음에 위치해야 할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내용적으로 볼 때, 이번 판결의 쟁점은 이것이었다. '이석기 등을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으로 볼 수 있는가.' 헌재는 '그렇다'는 판단을 했다. 내 생각 역시 헌재의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간의 통진당은 자정능력을 갖지 못했다. 경선 부정에서 내란음모파동까지 이를 이유로 당내 계파들이 떨어져나갈 동안에도 당 차원에서 사안을 조사하거나 이에 책임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아반성보다는 신랄한 정부 비판으로 내부 결속을 다졌다. 이름은 진보당이었지만 그 행태는 사실상 파쇼에 가까웠던 셈이다. 김이수 재판관은 이를 당내 민주주의의 훼손 정도로 본 것이지만, 통진당 내의 민주적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바꾸어 말해 당의 지도부가 이석기 그룹에 장악당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리위임제라는 특성상 유권자들이 투표했던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일종의 배신감(정치학에서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라고 말하는)을 느끼는 일은 다반사다. 물론 배신감에 관한 대부분은 공약 불이행 같은 정치적인 내용에 국한되어있을 것이고 유권자는 다음 선거에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물면 된다. 하지만 단지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의회의원이 법을 위반했을 때 그 의원직을 박탈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의원 개인이 아닌 정당적 차원에서, 그것도 단순 위법이 아닌 위헌적 요소를 갖는 것이라면 문제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삼권분립, 대표위임 모두 법 테두리 내에서 발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지난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에 표를 줬던 유권자였다. 그런 내 대표성을 사법부가 일방적으로 무효화시켰다는 사실이 썩 좋을 수만은 없다. 하지만 더 불쾌한 건 내가 위임한 권리가 투표 당시엔 존재조차 몰랐던 소수의 세력에 의해, 더욱이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민주적 가치를 오히려 파괴하는 방식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내가 위임한 권리란 생각보다 강력한 권한들이다. 입법에 관한 건 말할 나위 없고 행정부 감시, 면책특권, 국가적 지원 혜택까지. 만약 사법부의 판단이 없었다면 그들은 계속해서 내가 위임한 권리를 행사했을 것이다.

물론 그 여지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사법부의 개입이 최선인 것은 아니다(이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선거라는 정치적 절차에 의해 스스로 를 정화시키는 게 가장 바람직한 과정일 것이다. 통진당 또한 이미 지지층이 많이 이탈한 상태라 다음 총선에서는 원내진입마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걸러질 가능성이 컸다. 그런 점에서 헌재의 판결이 지나치다는 평가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헌재의 판결이 바람직하다 혹은 그렇지 못하다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을 꼭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데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사법부가 정당을 해산했다는 사실만으로 반드시 이를 반민주적이라고 단언할 필요는 없다. 무엇이 자유다 무엇이 방종이다를 확실히 가릴 수 없듯, 마찬가지로 방어적 민주주의란 그 필요성 자체는 물론이며 어느 지점을 경계로 삼을 것인지조차 쉽게 말할 수 없는 굉장히 어려운 개념이다. 따라서 필요한 건 고민하고 또 고민해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자칭 진보주의자라는 이들에게는 고민이란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진보적 가치라는 도식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무엇이 나오면 한 목소리로 까대기만 바쁠 뿐.

사실 유교도 인도의 카스트만큼이나 강한 계급 문화를 갖고 있다. 계급제 하면 연상되는 나라는 인도지만, 오랜 세월 유교의 지배를 받아온 우리나라도 인도 못지 않은 계급의식을 갖고 있던 셈이다. 물론 근대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이곳 사람들의 의식 구조에도 많은 변화가 일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봉건적 신분제나 사농공상의 구분이 배금주의나 직업의 귀천의식으로 대체됐을 뿐, 강한 계급 문화는 온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람들이 서열화와 상하구분에 집착하는 것도 이런 경향 때문이다.

처음에는 속도차인 줄 알았다. 대한항공 사건 같이 이따금 이 사회의 천박한 면면이 보이는 건 의식의 성숙한 정도가 물질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라 생각했다. 유럽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났던 건 수백 년 전 일이지만, 이곳에서 아래로부터의 민주화를 이루었던 건 불과 삼십여 년 전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짧은 기간에 물질적 풍요와 의식 수준의 균형을 바라는 건 욕심에 가까운 듯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 격차는 좁혀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단지 속도차가 아니었다. 훨씬 더 심각한 곳에 원인이 있었다. 사람들의 관습적인 의식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유교적 계급의식이 이미 내면 깊은 곳에 뿌리박힌 탓이었다. (물론 더 나은 것에 대한 우열을 가리기란 쉽지 않다. 만약 우리가 봉건적 질서 하에 있었다면 유교적 관념이 가장 잘 맞는 옷이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생활양식은 봉건제가 아닌 현대 자본주의에 기인하고 있는 만큼 옛옷을 벗고 지금에 맞는 옷을 찾아입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뻔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답은 하나다. 유교적 구습에서부터 벗어나는 것. 하지만 앞서 개신교에 관한 포스팅에서도 다뤘듯(유교를 몰아내기보단 오히려 유교화되었던 개신교처럼) 그것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으며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시간을 기다리는 일보다 백배 천배는 더 어렵고 지리한 일일 거다.

이백여 년 전 외래종교였던 기독교가 이땅의 인민과 실학자의 관심을 받았던 건 기독교가 토착신앙의 몰합리와 유교적인 구습에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주리라 믿었던 덕분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기독교(정확히 말하자면 그중에서도 개신교)는 그것들을 배척하기보다는 오히려 끌어안으며 로컬화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늘날 개신교 목회자들의 유별난 선민의식은 토착신앙의 샤머니즘과 유교적 권위주의가 버무러진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이 되었다.

개신교 목회자들이 과세안에 반발하고 있는 데에는 이런 선민의식도 크게 한몫하고 있다. 교회도 이제는 주의 교회이기보다는 목사의 교회에 가깝고, 신자들도 성경과 교리보다는 그에 대한 목사의 해설(가끔은 정치적 견해마저 아끼지 않는)에 영도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일부의 목사들은 스스로 본인의 위치를 목회자의 신분보다 샤머니스트적인 존재로 인지하는 듯하다. 그러니 과세에 반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샤머니스트의 성스러운 봉사에 속인들이 세금을 매긴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

인간이 새로움을 좋아하는 건 본능적인 속성에 가까울 거다. 새로움을 좋아했기 때문에 인류가 지금껏 생존할 수 있었으니까. 만약 그런 본능이 없었다면 인간이란 존재는 아주 조금의 환경 변화에도 심각한 멸종 위기를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그것에 적응하면서 생명력을 키워왔던 덕분에 인류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도 번창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간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도록 셋팅이 되어있는 셈이다. 간단하고도 단적인 예로는 이병헌이 있다. 이민정 같은 여신급 와이프를 두고도 바람을 피는 게 바로 인간이니까. '남자한테 가장 이뻐 보이는 여자는 처음 만난 여자'라는 말은 진리나 다름없다.

하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것만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만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새로운 노래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즐겨 듣는 것처럼. 또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보다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머물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이런 경향들에는 단지 편안함, 안락함 혹은 소유욕 같은 개념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다.

바람직한 연애라는 건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전자 수준의 남녀는 많겠지만 후자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또 설령 오랜 연인으로 발전해서 그 과정을 이행한다 하더라도 새로움이 바래는 만큼 설렘이 줄어드는 슬픈 현실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바꾸어 보자면 설렘이란 건 괜찮아 보이는 상대에게는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반대로 오랜 연인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은 아무하고나 공유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운명 앞에서는 설렘을 느끼지는 않는 것처럼, 결국 연애라는 것도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과정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