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588조에 이르렀다. 5년 동안 무려 80%가 증가한 수치다. 체감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음에도 대기업들은 여전히 자산을 불리고 있었다. 그동안 환율, 법인세, 노조문제가 이슈화될 때마다 윗사람들은 기업들 걱정에 노심초사 했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하지만 그들의 성장 담론은 공허한 레토릭에 불과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비정규직 확대, 고환율, 감세, 규제완화로 대기업에 몰빵해줬지만 정작 대기업은 번 돈을 현금성 자산으로 쌓아두기만 할 뿐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참고로 학교에서 배웠던 경제학의 관계는 뒤집어진지 오래다. 교과서에 나오는 가계 저축과 기업 투자의 관계는 이제 역으로 성립된다. 기업의 현금자산을 가계가 빌리는 꼴이 되어버린 셈.

낙수효과라는 건 없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전략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경기 침체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장기 불황이 심화될 수록 기업들은 실물투자보다는 유보금을 늘리고 유동성을 확보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바로 옆에 일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생산 부문의 잉여가치가 재투자되기보다 투기자본으로 금융화되는 건 이제 낯설지도 않다. 어쩔 수 없다. 그게 기업의 생리인 걸. 어쨌든 확실한 건 이거다. 대기업 밀어주기로는 절대 일자리 창출, 설비투자를 촉진시킬 수도 없고 사회의 전반적인 소득 증진, 경기부양에도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 단지 고용 없는 성장과 양극화만 지속될 뿐.

국회의원 급여와 연금을 삭감해야 한다.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며 이곳의 시민의식이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물론 정치인들에 대한 안좋은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세금 몇 푼 아깝다고 의원들의 처우 수준을 낮추자는 건 전형적인 속물들의 논리다.

나는 국회의원 의석이 대폭 늘어나길 바란다. 의원 수가 많아져야 의원 개인의 영향력이 적어질 수 있으며 의원 한 명당 감사 범위가 줄어들 수 있다. 국회의원의 권력이 줄어들고 더욱 집적인 국정감사가 가능해지는 거다. 국회의원의 급여와 연금도 후하게 보장되길 바란다. 그들이 이뻐 보여서가 아니다. 그래야만 최소한의 청렴도가 유지될 수 있어서다. 만약 연금이 없다면 적지 않은 선거비용 들여 당선된 의원들은 낙선 혹은 은퇴 후 신분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회의원이란 공적인 권력을 재산 축적이라든지 인사 알선 같은 사적인 용도로 남용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어떤 법과 제도가 들어서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급변하는 세태 속에서 의원들에게 검은 돈이 흘러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의원들의 급여 수준이 낮아지고 연금이 폐지된다면 이런 유혹으로부터 더 취약해질 뿐이다. 당장의 세금 몇 푼 아끼려다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만 할 수도 있다.

직업공무원제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사회가 공무원의 복리후생 수준마저 시기할 정도로 양극화된 것인지, 공무원연금마저 과한 수준이라고 아우성이다. 호황기엔 철저히 내려다보다가 불황기엔 되레 질투하는 거다. 역시 전형적인 속물 근성이라고나 할까. 직업공무원제라는 게 왜 있고 공무원이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조차 제대로 모르는 듯 하다. 공무원의 연금과 신분보장이 그렇게 배아프다면 차라리 모든 공행정을 아웃소싱으로 쪼개어 일반 기업들에게 맡으라고 하지, 굳이 직업공무원이란 제도를 존속시킬 필요가 있나.

공무원은 민간 종사자들과 다르다. 법적으로 겸직 자체가 불가능하다. 업무 외엔 사익 추구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없다. 성과급이나 인센티브가 없는 건 당연. 급여도 짠 편이다. 경기 불황엔 가장 먼저 임금이 동결되지만 경기가 호황이라고 해서 혹은 정부가 재정흑자라 해서 보너스를 받는 일 따위는 없다. 정치적인 활동은 꿈도 못꾸고 가입 불가능한 단체들도 의외로 많다. 다른 직업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건 두 말할 나위없다. 그럼에도 양질의 인력들의 원활하게 수급되는 이유. 혹은 정부가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공무원들을 온전히 관리할 수 있는 이유. 공무원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 중립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유. 그건 모두 신분 보장과 연금제도라는 특성에 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은 인구학적인 개념에서부터 접근해야지 민간 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수리적인 비교에서부터 시작되어선 안 된다. 국민연금이나 다른 사적 연금과 공무원연금은 같은 '연금'이란 용어를 쓰고 있을 뿐, 이것이 시행되게 된 역사나 배경, 취지, 목적이 엄연히 다르다. 그런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야 된다거나 통합해야 한다는 건 직업공무원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며 그것이 사적부문의 공공부문으로의 침투를 용이하게 만든다는 걸 정녕 모르고 하는 얘긴가, 이 근시안적인 속물들이여.

우리나라가 IT강국이란 말은 한심한 소리일 뿐. 그놈의 엑티브엑스좀 없애달라는 얘기가 몇 년 째인데 전혀 진전이 없다. 금융권 사이트를 들어가면 뭘 하기도 전에 덕지덕지 보안프로그램부터 설치해야 한다. 내 소중하고 깨끗한 드라이브에 악명 높은 엔프로텍트나 소프트캠프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건 정말 불쾌한 일이다. 길 가다 만난 똥개가 내 바지를 핥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보안프로그램 중 하나라도 빼먹으면 사이트 이용 자체를 못하기에. 물론 다 설치한다고 사이트 이용이 원활하리란 보장은 없다. 워낙 충돌과 오류가 많은 게 이 나라의 금융결제 사이트들이니까(보안툴 업체들은 아예 홈페이지 대문에 오류 관련 안내를 제공하고 있는 지경).

보안프로그램들을 징그러워 하는 이유가 있다. 일단 대부분의 툴들이 한 번 설치하고 나면 결제페이지나 은행사이트를 이용하지 않아도 프로세스에 상주하는 놈들이 많다. 또 잡다한 레지스트리도 구동을 무겁게 만든다. 물론 성능이 아주 짱짱한 pc로서는 봐줄 수 있는 문제일 터. 하지만 그렇지 않은 pc도 많다. 이런 보안툴 때문에 pc 성능 자체가 둔해질 수 있는 거다. 더 심각한 건 이런 보안툴들이 설치되고 삭제되고 업데이트 되고를 반복하면서 자기들끼리 서로 혹은 다른 프로그램들과 충돌을 일으킨다는 거다. 난리가 따로 없다. 특정 프로세스가 실행되어있는 상태에서는 구동이 안 될 때도 많고 심지어는 백신프로그램에 감지되는 일도 다반사. 나중에는 이게 보안 프로그램인지 악성 프로그램인지 헷갈릴 정도. 심지어는 이런 툴은 한 번 설치되면 삭제를 시도해도 제대로 삭제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업체에서 프로그램을 삭제하는 프로그램을 따로 제공하고 있을 정도.

드라이브라는 건 사적인 공간이다. 내가 내 돈을 들여 만들어놓은 나만의 저장장치다. 거기에 내가 원치 않은 프로그램을 설치하라 강요할 수는 없는 거다. 나만의 공간을 쾌적하게 쓰고 싶은 것. 그건 당연한 권리 아닐까. 그럼에도 아주 당당하게 (가뜩이나 문제가 많은) 연동 프로그램 설치를 강제하는 금융권, 관공서의 태도를 보면 참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다. 불만 많은 웹환경엔 무신경으로 일관하면서 IT 강국이란 말은 잘하는 늙은 관료들(방통위든 금융위든 금감원이든). 그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IT 강국이란 게 대체 뭔지.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그냥 광대일 뿐이다(천대 받았던 어휘에 거북함을 느낀다면 그냥 '엔터테이너' 정도로 해두자). 광대는 '한 판 놀아보세' 하고 신명나게 놀면 그만이다. 그런 이들에게 무결한 도덕성, 모범적인 준법정신 따위를 기대한다는 건 모순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런 연예인에게 있는 게 아니라 연예인을 공인이라도 되는 양 숭배하고 우상화시키는 대중들에게 있다고 봐야지.

광대들이 엽전을 벌기 위해 판을 벌였던 것처럼 연예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방송에 출연하고 노래를 부른다. 대중이 소비하는 콘텐츠를 만들 뿐. 연예인들이 유명세를 바라는 것도 결국 높은 몸값을 얻기 위함이다. 결국 목적은 돈. 그나마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본인의 직업적인 성공 정도(그것 또한 결국 몸값이긴 하지만)랄까. 마찬가지로 한류스타들이 해외로 나가는 건 국위선양을 위해서가 아니다.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나가는 것일 뿐. 흔히 듣는 말처럼 연예인은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게 아니란 얘기다. 연예인과 대중은 자본주의적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연예인을 대중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갖는 대단한 존재로 만들고 있는 건 역설적이게도 대중들 자신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연예인까지도 기자회견이랍시고 결혼 소식을 알리는 꼴사나운 광경이 벌어지는 건 그 연예인 탓도 기자들 탓도 아니다. 그런 기사를 읽는 대중들 탓이다.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관심을 갖고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 하고, 지나친 관심 혹은 지나친 비난까지도 아끼지 않는다. 대부분 가십의 수준에서 소모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런 관심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인지는 별론으로 치더라도 정말 연예인이란 이들이 그렇게 많은 관심과 시선을 받을 만큼 중요하고 대단한 존재인지 모르겠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 그들이 공무원이란 직업을 바라는 건 어떤 심리에서일까. 직업적인 안정성, 주변의 권유, 본인의 적성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공통적인 건 하나다. 돈을 보고 그 직업을 바라는 이는 없다는 것. 그게 직업공무원제의 존재 이유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일정 수준 이상의 급여와 신분을 보장해줌에 따라 공행정을 집행하는 데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위치를 담보하는 것.

반대로 조선시대 지방에서 수령을 보좌하던 육방들은 국가로부터 따로 녹을 받지 못했다. 일정한 급여가 없다보니 기회가 될 때마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중앙에서 파견되어 지역 사정에 밝지 못했던 수령과 힘없는 지방민들 사이에서 온갖 비리와 부정을 저질렀던 것이다. 육방의 맏형격인 '이방 나으리'가 백성 수탈의 아이콘이 되었던 것도 이 때문. 이런 의미에서 덧붙여 말하자면 연금개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국회의원의 연봉과 연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에의 토로일 뿐. 한 마디로 공무원에 대한 처우는 그 사회의 청결성을 대변해준다.

가장 아쉬운 건 여전히 행정부나 공무원을 자신의 졸개쯤으로 여기는 정치인들이다. 연금 개혁이라는 중차대한 사안을 그저 상명하복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당사자인 공무원들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셈. 차라리 고령화나 인구학적 개념을 토대로 논의를 시작했다면 반발이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일방적으로 애국심이나 희생을 강요했다. 논의의 키워드부터 잘못 설정된 거다.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당사자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협조를 구하며 구체적인 합의안을 논의하는 정상적인 과정은 생략되었다. 대신 청와대의 의중을 여당수장과 총리가 황급히 받들어모시는 모양새다. 앞서 있었던 분권형 개헌 이슈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러다보니 공무원들의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다. 이에 약삭 빠른 정치인들은 국민vs공무원 구도로 이슈를 몰아가며 반발을 무마시키려 하고 있다. 공무원들을 마치 정부적자에도 나몰라라 하는 무뢰배 이미지로 만드는 거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바라는 건 큰 무엇이 아니다. 그저 본인이 적립하고 약속받은 연금액을 보전받길 바랄 뿐이다. 적자의 책임 또한 엄밀히 말해 공무원보다는 정치인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행정이란 건 법의 기술적이고 구체화된 집행일 뿐 그 법을 만들고 그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건 정치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늘 그렇듯이 정치인들이 책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