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한 해 농사가 풍년인지 아니면 흉년인지는 매우 중대한 문제였다. 고대에는 흉작이 지속되면 신하들이 왕을 탄핵하기도 했고, 풍작이냐 흉작이냐에 따라 한 국가의 흥망성쇠가 좌우되기도 했다. 때문에 왕이 직접 신하들을 거느리고 하늘에 제를 올리는 것이 당시의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이는 농사를 짓는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대게 지주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짓는 백성들에게는 풍년일수록 본인이 가져갈 수 있는 몫이 많아지기 마련이었다. 반대로 흉년일 경우 그나마 적은 수확량의 대부분을 지주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기근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농부들은 내심 풍년보다는 흉년이 들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풍년인 해보다 흉년인 해에 농부들의 수입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수확량이 많은 풍년인 해에 더 많은 수입을 얻을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것이 바로 '농부의 역설' 때문이다.


농부의 역설의 핵심은 수요가 비탄력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라는 것은 쌀값이 비싸졌다고 하루에 한 끼를 먹거나, 돈이 많은 부자라고 하루에 다섯 끼를 먹지는 않는다. 쌀이라는 재화는 그 성격상 필수재에 가깝기 때문이다. 쌀뿐만이 아니라 농산물 대부분이 가격이 변화하더라도 그 수요량은 크게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가격이 내린다고 해서 갑자기 많은 량을 소비하지도 않으며, 반대로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갑자기 구매를 아예 포기해버리는 재화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 그래프는 비탄력적인 수요인 경우[각주:1], 공급량이 감소하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기존 E의 균형에서 Q만큼 생산하던 농부였지만, 흉년이 들자 생산량이 Q′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수요가 비탄력적이기 때문에(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은 P에서 P′으로 오르게 되었고 새로운 E′에서 균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각주:2] 결국 수입 감소분(B)보다 수입 증가분(A)이 크기 때문에 농부는 기존의 E보다 새로운 균형인 E′에서 수입이 늘어나게 되었다. 흉년인 경우 농부의 소득이 증가한 것이다.



반대로 공급량이 늘어난 경우 농부는 기존 Q보다 많은 Q′만큼 생산하게 될 것이고, 역시 수요는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생산량이 늘어난 만큼 가격도 하락할 것이고 새로운 E′에서 균형을 이루게 될 것이다. 결국 농부는 A만큼 수입이 감소하고 B만큼 수입이 증가하게 되었는데, 수입 감소분이 수입 증가분보다 크기 때문에 전체적인 농부의 수입은 줄어들게 된다. 즉, 풍년인 해에는 농부의 소득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 같은 현상 때문에 농산물이 풍작을 이룰 때 농부들은 울상을 짓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수확철만 되면 전국적인 풍작으로 인해 열심히 공들여 키운 작물을 그냥 엎어버리는 농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수확량은 증가했지만 탄력적이지 못한 수요 탓에 작물 가격이 급락해서 작물을 재배하는 것조차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경우가 나오기 때문이다.

  1. 수요가 비탄력적일수록 수요곡선은 수직선에 가까워지고, 반대로 탄력적인 수요인 경우일수록 수요곡선은 수평선에 가까워진다. [본문으로]
  2. 농부의 전체 수입은 가격×수확량(P×Q), 즉 전체 사각형 면적의 넓이가 된다. [본문으로]
  • 2012.07.21 15:34 #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별셋아이 2013.04.24 02:55 # modify/delete reply

    그야말로 역설적이군요. 이해가 아주 쉽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걸까요??
    그러니까 풍년이 든다면 기뻐할 요인에는 무엇이 있을수 있을까요?

    • 3e 2013.05.14 09:44 # modify/delete

      이 형태를 일으키는 수요의 탄력성이 이미 수년의 수요와 공급으로 아뤄진 균형에서 나타나지는것이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3자의 개입 없이는 해결이 좀 어렵습니다. 다만 농부 개인의 입장에서 보았을때는 농사를 시작하기전에 작물을 미리 팔아서 손실의 위험을 최소화 할 수는 있습니다. (금융의 헤지부분을 찾아보시면 자세히 나와 있을 겁니다.) 그러나 농업 자체가 근본적으로 리스크가 큰 산업이고 일반적으로 농부들은 위험을 취하는 성향을 가진다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것들을 다 제처 두고도 농업이 일차산업이고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의 경우에는 밀과 같은 작물의 가격관리가 정부차원으로 이뤄지기도 합니다. 정부가 작물을 대량으로 시장에 공급하거나 사들임으로서 매년 일정가격을 유지시키고 농부들의 손실을 줄이고, 농업을 이어가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Rilakkuma 2018.04.07 14:30 # modify/delete reply

    과제 시 참고가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경제적 문제는 최적화(optimization) 혹은 균형(equilibrium) 중 한 가지의 문제로 귀착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여기서 최적화라는 것은 경제 주체, 즉 의사결정자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며, 자신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상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서 생겨나게 된다. 따라서 최적화란 의사결정자의 합리성을 전제해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균형은 시장에서 경제주체들이 상호관계를 맺고 있는 데서 나오는 현상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장에 표출된 상반된 힘이 맞아떨어진 상태를 균형이라 부르며, 여기에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많은 경제 현상들이 파생되어 나온다.


경제학의 합리성


경제학이 설정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 중 하나는 모든 경제주체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만약 합리성(rationality)의 가정이 부정된다면 경제학의 모든 이론체계가 송두리째 부정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러한 합리성의 가정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각주:1] 이간의 합리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완벽한 합리성을 전제로 하여 도출된 이론이 현실에 들어맞을 리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합리성의 가정이 현실의 사회현상에 대해 유의미한 예측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특히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은 '수단(mean)으로서의 합리성'을 뜻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단 설정된 목표를 가장 좋은 방법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노력과의 관련 하에서 합리성이 비로소 제 뜻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이유는 무엇인지에 주목하며 합리성을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 단지 경제학에서는 욕망, 기호, 동기 등 목표 설정과 관계되는 여러 요인들이 이미 주어졌다고 가정하고,[각주:2] 단지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합리성에만 관심을 갖는다. 물론 합리적인 선택이라 해서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합리적 선택이란 객관적인 정보와 신중한 고려의 토대 위에서 여러 선택가능성을 저울질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고려해본다면 비합리적인 방법보다는 나을 것이 분명하다.


최적화


경제학에서 설정하는 경제인(homo economicus)은 그가 바라는 것을 가능한 한 극대화하려고 노력할 것이며 그가 원치 않는 것을 극소화하려고 노력한다. 최적화란 바로 이 극대화와 극소화를 합쳐서 이르는 말로, 자원의 희소성에 직면한 우리의 합리적 선택은 바로 이런 최적화를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최적화는 앞에서 설명한 합리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미시경제이론에서 최적화는 개별 경제주체들의 동기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소비자의 최적화 행위는 그의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동기에서 행해진 상품 선택으로 나타난다. 어떤 소비자가 한 상품을 소비하는 행위는 그 행위가 그의 효용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와 같은 개별 소비자들의 최적화 행위는 시장에 모여 시장수요를 결정하게 된다. 또한 소비자들의 최적화 행위가 모여 시장수요를 결정하는 것처럼, 기업들의 최적화 행위가 모여 시장공급을 결정하게 된다.


균형


경제학에서 중요한 관심을 차지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균형이다. 미시경제이론에서 다루는 개별 상품의 가격과 거래량, 거시경제이론의 중심적인 개념인 국내총생산이나 물가수준은 모두 균형현상의 일종이다. 개별 경제주체들의 최적화 행위는 시장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 균형현상이다. 우리가 한 국민경제에서 보게 되는 거의 모든 현상은 최적화 행위에서 발단되고 균형과정을 통해 바로 그 현상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 같은 균형은 직관적으로 '시장에서 상반된 여러 가지 힘이 서로 맞아떨어진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상반된 힘이 맞아떨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교란요인이 없는 한 그 상태가 그대로 유지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림에서 파란색의 1번과 3번의 공은 균형의 상태에 놓여있고, 붉은색의 2번 공은 불균형 상태에 놓여있다. 2번 공이 불균형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이 공은 경사진 공에 놓여있기 때문에 묶거나 붙잡는 것처럼 억지로 그 자리에 세워놓지 않는 이상 현재의 위치에 머무를 수 없다. 즉, 새로운 교란요인이 없다 하더라도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1번과 3번 공의 경우 일단 정지 상태가 되면 추가적인 다른 힘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될 것이므로 균형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단 1번 공과 3번 공은 '안정성'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 1번 공은 현재 균형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아주 미세하게나마 새로운 힘이 가해지는 경우 곧바로 굴러떨어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교란요인이 발생하면 더 이상 현재 상태의 균형을 유지시킬 수 없음을 의미한다. 반면 3번 공의 경우, 누가 그것을 건드려 움직이더라도 몇 번의 움직임 끝에 결국에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즉, 교란요인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본래의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균형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가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균형이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가 아니면 여러 개의 균형이 존재하는 가에도 관심을 갖는다. 즉, 균형의 유일성 여부도 중요한 초점 중 하나가 된다. 여러 개의 균형 중에서도 어떤 균형이 가장 안정적인 상태인지 따져본다는 것이다.



참고자료

『미시경제학』, 이준구, 2008, 법문사

『현대 경제학원론』, 김대식, 노영기, 안국신, 2007, 박영사

『경제학의 ZIP』, 김진욱, 2007, 네오시스


  1. 많은 수의 정치학자, 사회학자들이 경제학의 기본 가정에 대한 이 같은 불만을 갖고 있다. 베버에 입각한 정치경제학이나 사회경제학이 이러한 견해를 갖는 사조에 속한다. [본문으로]
  2. 이 부분은 경제학의 가장 주된 장점이자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이론을 굉장히 단순화시켜 설명하기 때문에 명확하고 명료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사실관계들이 얽혀있는 현실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기회비용과 매몰비용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란 어떤 선택을 함으로써 포기해야만 하는 다른 선택대안 중에서 가장 가치가 큰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대신 그 시간에 TV 드라마를 볼 수도 있고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수도 있고 친구와 만나 술자리를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포기한 다른 선택대안 중 가장 큰 가치를 지닌 선택대안을 기회비용이라 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할 때 포기해야 하는 대안의 가치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으므로 기회비용은 주관적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라마 시청이 기회비용이 될 수 있고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에게는 데이트가 기회비용이 되는 것처럼. 따라서 두 사람이 같은 선택을 했더라도 두 사람의 기회비용은 서로 다른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두 사람이 동일한 선택을 했을 지라도 상황에 따라 기회비용의 크기는 다를 수 있다. 기회비용은 화폐액으로 측정되기도 하나 화폐로 측정된 금액은 기회비용의 일부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서는 항상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며,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비용이란 개념은 모두 기회비용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매몰비용(sunk cost)이란 이미 지출이 확정되어 다시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을 의미하며, 함몰비용이라고도 한다. 일단 지출하고 나면 회수할 수 없는 기업의 광고 비용이나 기술개발 비용 등이 이에 속한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이미 지출되었으나 회수가 불가능한 매몰비용은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지금까지 2억 원의 기술개발비용을 지출하였는데 기술개발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4억 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며, 기술개발이 완료되면 5억 원의 수입증가가 예상된다면 기존에 지출한 2억 원은 매몰비용이므로 기술개발을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생산가능곡선


생산가능곡선(Production Possibility Curve:PPC)이란 모든 생산요소를 가장 효율적으로 투입했을 때 최대로 생산 가능한 X재화와 Y재화의 조합을 나타내는 곡선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생산가능곡선은 우하향하고, 원점에 대하여 오목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생산가능곡선이 우하향하는 것은 생산요소의 양이 주어진 상태에서 X재 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Y재 생산량을 감소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즉, 우하향의 생산가능곡선은 자원의 희소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생산가능곡선이 원점에 대하여 오목한 것은 X재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점점 더 Y재 생산에 적합한 요소들도 X재 생산에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산가능곡선 내부의 점(D)은 생산이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점(능력보다 덜 생산하는)으로 노동의 일부가 실업상태에 있거나, 자본이 일부 유휴상태에 있는 점이다. 또한 생산가능곡선 바깥쪽에 있는 점(E)은 현재의 기술수준과 주어진 생산요소로는 생산이 불가능한 지점에 위치한다. 반면, 생산가능곡선 상의 A, B, C점 모두는 생산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다(세 점의 차이점은 X재와 Y재 중 어느 재화를 더 생산하느냐일 뿐이다). 즉, 생산가능곡선 내부의 점은 생산이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점을, 생산가능곡선 외부의 점은 현재의 기술수준으로서는 도달이 불가능한 점을 의미한다.


한계변환율


한계변환율(Marginal Rate of Transformation:MRT)은 X재 생산량을 한 단위 증가시키기 위하여 감소시켜야 하는 Y재의 수량이며,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한계변환율은 X재 1단위를 더 생산하기 위해 감소시켜야 하는 Y재의 양이므로 X재 생산의 기회비용을 Y재의 단위수로 나타낸 것이다.[각주:1] A점과 B점 사이에서 측정된 한계변환율은 두 점을 연결한 직선의 기울기로 측정되는데, 두 점을 근접시키면 한계변환율은 생산가능곡선 접선의 기울기와 같아진다.



X재 생산량을 2단위 증가시키기 위하여 감소시켜야 하는 Y재 수량은 6단위이므로 X재 1단위 생산의 기회비용은 Y재 3단위이다. 즉, 한계변환율은 3이 된다.




참고자료

『미시경제학』, 이준구, 2008, 법문사

『현대 경제학원론』, 김대식, 노영기, 안국신, 2007, 박영사

『경제학의 ZIP』,김진욱, 2007, 네오시스



  1. 한 재화의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그 재화생산의 기회비용은 점점 증가한다. 다시 말해, X재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X재 생산량 증가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Y재의 수량(X재 생산의 기회비용)이 점점 증가하는데 이를 '기회비용체증의 법칙'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 kongjya 2013.04.17 21:40 # modify/delete reply

    덕분에 이해를 잘 하고 갑니다 :)

  • i can do it 2013.07.09 21:16 # modify/delete reply

    쉽게 이해됐네요 감사합니다

  • 김인혜 2014.02.28 22:47 # modify/delete reply

    질문이 있습니다! X재 생산의 기회 비용이 체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저도 전공자가 아니라 명확하게 설명하는 건 어렵네요. 책에서 설명하는 건 이렇습니다. 자동차와 반도체를 만드는 나라가 있는데 만약 자동차를 만들던 인력과 설비를 반도체 생산에 투입시킨다면 그만큼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하나의 생산에 집중하는 것보다 두 가지 모두 생산하는 게 좋다고 나와있네요. 썩 마음에 드는 설명은 아니네요.



오래 전에 어느 나라의 나이 많은 왕이 그 나라의 신하들과 학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자신이 죽기 전에 이 세상의 진리를 모두 집대성해서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후 학자들은 10년 간 노력하여 이 세상의 진리를 모두 망라시킨 10권의 책을 편찬하였다. 그러나 왕은 양이 너무 많아 읽을 수 없으니 분량을 대폭 줄이라고 다시 명령했다. 학자들은 어쩔 수 업이 사소한 진리는 제외시키면서 단 한 권의 책으로 그 내용을 집약시켰다. 그런데 이미 노병이 들어 쇠약해진 왕은 그것마저 읽을 수가 없으니 그 내용을 단 한 장으로 요약하라고 명령했다. 할 수 없이 학자들은 다시 한 권의 책에 포함된 진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선택해서 한 장의 종리에 정리했다. 이제 막 숨이 넘거가려는 왕은 다시 그 내용들 중 가장 중요한 하나의 문장만을 말하라고 했고, 신하들은 왕이 죽기 전 한 마디만을 전하였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There is no free lunch)."[각주:1]



경제학이란?


누구나 배불리 먹고, 멋진 옷을 입으며, 편안한 집에서 살고 싶어한다. 이와 같은 인간의 물질적 욕망은 채우고 채워도 찰 줄 모른다. 그래서 애초부터 인간의 욕심은 바다와 같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나를 얻으면 둘을 탐내고, 둘을 얻으면 셋을 탐내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물욕과 거리가 먼 소탈한 심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또한 욕심이 있다 해도 한 사람이 특정한 시점에서 특정한 물건을 원하는 양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사는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물욕이란 건 끝이 없을 것이다. 욕망은 이처럼 한없이 큰데, 우리가 갖고 있는 경제적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원하는 만큼 실컷 소비한다는 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경제학은 바로 이 냉엄한 현실에서 그 출발점을 찾고 있다. 경제학을 연구하는 목적은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유용하게 활용하여 조금이라도 더 큰 물질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는 데 있다.


한 마디로 말해 경제학은 희소한 경제적 자원을 활용하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과 관련된 학문이다. 따라서 희소성과 선택은 뗴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학의 본질을 형성하게 된다. 만약 어떤 자원이 희소하지 않다면 구태여 최선의 활용방법을 고민하고 선택하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물질적 욕망을 넉넉히 채워 주고도 남을 만큼 풍부하게 존재하는 자원은 거의 없다. 이렇게 한정된 자원만을 갖고 사는 우리의 경제생활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학의 기본 과제


경제학이 가정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전제 중 하나는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각자가 어떤 행동을 할 때 편익과 비용을 고려하여 최소의 비용을 통해 최대의 편익을 얻을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한다는 의미이다. 즉, 사람들은 그가 바라는 것을 가능한 한 극대화하려고 노력할 것이며, 그가 원치 않는 것을 극소화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어떤 행위를 할 때마다 편익과 비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을 경제인(homo economicus)이라 한다.


둘째로 경제주체들은 모두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는 전제이다. 여기서 경제적 유인(incentive)이란 처벌 가능성이나 보상과 같이 사람이 행동하도록 만드는 어떤 자극을 의미한다. 합리적인 사람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하므로 특정한 행위를 할 때의 편익이 커지면 그 행위를 할 가능성이 커지는 반면 비용이 커지면 그 행위를 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그러므로 경제적 유인은 개인들의 행동, 시장의 움직임, 정부정책의 효과분석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심지어 어떤 경제학자는 경제학 전체가 '사람들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 나머지는 모두 부수적이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제의 3대 문제


국민경제가 갖고 있는 3가지의 주요과제를 사무엘슨(P.A.Samuelson)은 '경제의 3대 문제'로 명명했다.

어떤 재화를 얼마만큼 생산할 것인가? (생산물의 종류와 수량)

제한된 자원으로 모든 재화를 원하는 수준까지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어떤 재화를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를 결정해야한다.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생산방법)

생산물의 종류가 결정되면 어떤 방법으로 생산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해야 하는데, 얼마나 효율적인 생산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소비가능한 재화와 서비스의 수량이 달라지고 경제 전체의 후생수준도 차이를 보이게 된다.


누구를 위하여 생산할 것인가? (소득분배)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사회구성원에게 배분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3대 경제문제[각주:2]의 해결방법은 그 사회가 채택하고 있는 경제체제에 따라 다르다. 다만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의 자원 배분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기본적인 경제문제들이 시장의 '가격기구'를 통해 해결되는 것으로 보고 논의한다.




참고자료

『미시경제학』,이준구, 2008, 법문사

『현대 경제학원론』, 김대식, 노영기, 안국신, 2007, 박영사

『경제학강의』, 이영환, 김진욱, 2007, 율곡출판사

  1. '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라고 표현한 교과서들도 있다. [본문으로]
  2. 일부 경제학자들은 전통적인 경제의 3대 문제에 '언제 생산할 것인가?'의 동태적인 자원배분문제를 포함시켜 경제의 4대 문제라고도 한다. [본문으로]

‘자연’과 ‘인공’의 경계는 어떤 지점일까? 우선 ‘자연’과 ‘인공’ 두 가지의 의미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자연의 개념 정의는 상대적으로 쉽다.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본연 그대로의 사물이나 상태를 자연이라 한다. 그렇다면 인공은 무슨 의미일까? 사전적으로는 인간이 가공하는 것, 다시 말해 사람에 의해 모양이나 형질이 바뀌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실상 이 두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일반 도시 가정의 가스레인지나 시골 주택의 오래된 아궁이나 모두 엄밀히 따지자면 사람의 손길을 탄 똑같은 ‘인공물’이지만 사람들은 아궁이에 나무를 태우고 밥 지어 먹는 것을 ‘자연적’이라 말한다. 때로는 건강에 좋고 나쁨을 기준으로 자연과 인공을 구분하기도 하고, 때로는 산업화나 근대화를 기준으로 두 개념을 구분하기도 한다.


원론적으로 접근하면 더 모호하다. 자연 상태와 문명을 가르는 기준인 문화라는 말은 ‘재배하다’ 혹은 ‘경작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culture에 근거한다. 이에 따르면 밭을 가꾸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행위도 ‘자연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인공적인 행위에 해당한다. 텃밭을 가꿔 직접 무친 나물 요리도 사실 자연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철저히 문명의 산물이란 것이다. 따지고 보면 culture란 의미처럼 인간이 만든 가공물들도 모두 자연의 것들을 축출하거나 혼합하는 등 변형하여 만든 것들이기에 자연에는 없는 인공물이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다. 플라스틱도 자연에서 나온 원유 등을 합성하고 가공하여 만든 것 뿐이지, 플라스틱이란 물질이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서론이 길었지만) 조미료도 마찬가지 아닐까? MSG(monosodium glutamate의 약칭)라 하여 최근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잡은 인공조미료도 사실 사탕수수 같은 천연의 재료에서 축출된 성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인공조미료의 주성분은 글루타민산은 소고기, 다시다, 멸치, 토마토, 치즈, 콩 등 일상의 식품은 물론 심지어 모유에도 포함되어 있는 성분이다. 단지 인공조미료는 천연 재료에서 글루타민산만을 축출하는 일련의 화학적 공정 과정을 거친다는 것 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한 ‘화학적 공정 과정’이란 말에 어감상 두려움을 갖기 쉽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과정은 염전에서 소금을 축출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과정 자체의 유해성은 없다고 한다(글쓴이는 공학도가 아니므로 자세한 공정 과정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부작용 경험 등을 근거로 인공조미료에 대한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의들이 진행 중인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록 1987년 세계보건기구가 MSG 1일 섭취량 제한을 해제하고 1995년 미국실험생물학회연합의 정밀한 임상 실험 결과 MSG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긴 하지만 유명한 ‘중국음식 증후군’ 논란이라든가 개개인이 느끼게 되는 생리적인 반응 경험 등은 아직까지도 MSG의 안전성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걷을 수 없게 만든다. 더구나 과거 방사선 노출의 유해성을 몰랐던 것처럼 미래 과학 수준의 향상으로 MSG의 유해함이 새롭게 증명되는 일말의 가능성도 남아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의 여지는 말 그대로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나 가능성일 뿐, 어찌됐건 오늘날의 과학적 연구들에서는 MSG의 유해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사람들은 MSG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을 갖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 MSG가 인체에 유해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는 매스컴의 영향이 크다. 시청자나 독자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MSG의 유해성에 대해 소란스럽게 떠들며 공포심과 경각심을 조성하다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관심은 MSG 자체의 유해성 논란에만 함몰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MSG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은 따로 있다. MSG 자체의 유해성보다는 이를 둘러싼 식습관이나 일률화된 입맛, 요식업자들의 편법 등에 대해서 고민해볼 때가 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MSG의 향미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2010년 일본에서 발표된 통계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1인 1일 MSG 추정 섭취량은 약 2g 정도다. 반면 유럽인들의 추정 섭취량은 0.2g 정도, 북미인들은 0.6g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럽이나 북미에 비해 많게는 10배에 이르는 MSG를 섭취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고작 2g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MSG 2g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천연 상태의 멸치를 무려 17kg이나 먹어야 한다. 다시 말해 멸치 십수 개의 박스를 하루만에 전부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MSG를 많이 먹게 되면 자연스럽게 소듐(나트륨) 또한 많이 섭취하게 된다. MSG는 글루타민산과 소듐이 결합되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권장량을 넘어선 과도한 소듐 섭취가 우리 몸에 얼마나 나쁜 해악을 끼치는 지는 널리 알려져 있다. 각종 성인병은 물론이며 혈압이나 심장병, 위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이나 찌개 같은 국물을 즐기는 식습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나물을 간하기 위해서는 소량의 MSG로도 충분하지만 냄비 한가득 들어있는 찌개의 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MSG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소듐의 섭취량 또한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한 번 MSG에 길들여진 입맛은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맵고 짜고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지면 덜 자극적인 음식들은 싱겁고 맛없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외식을 하고 오면 이따금 집에서 먹는 반찬들이 싱겁게 느껴지는 것도 혹은 집에서 온갖 재료를 넣고 아무리 열심히 떡볶이를 만들어도 분식점 떡볶이 맛이 나지 않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MSG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레 그 사용량은 늘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MSG의 자극적이고 강한 맛이 음식의 다른 맛들을 죽인다는 점이다. MSG는 비용도 적게 들 뿐만 아니라 매우 빠른 시간 내에 훌륭한 맛을 내게 해준다. 덕분에 요식업자들은 MSG만 있으면 굳이 질 좋고 싱싱한 재료를 쓰지 않아도 충분한 감칠맛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횟집에서 나오는 매운탕 맛이 어느 식당을 가든 똑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 해물을 넣든 야채를 무엇을 쓰든 일반인들이 느끼는 매운탕 맛은 결국 MSG의 맛 한 가지로 수렴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형편없는 조리 과정과 질 나쁜 재료를 MSG의 감칠맛으로 포장하는 식당들이 늘어났다. MSG의 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과 감칠맛의 유혹에 넘어가 ‘불량식당’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재료로 정성 들여 음식을 내던 식당들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문을 닫게 되었다. 결국 거리에 남게 된 것은 MSG만으로 맛을 내는 식당들 뿐. ‘먹거리 X파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도 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MSG를 둘러싼 논의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냉정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일부 매스컴이나 기업들이 조장하는 MSG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은 과학적 근거도 갖추지 못했을 뿐더러 사회적인 피로도만 높일 뿐이다. 그렇다고 MSG의 무분별한 남용을 방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과도한 MSG의 사용은 음식 재료 본연의 다양하고 기품 있는 맛들을 가려버리기 십상이다. 반면 적당한 수준에서 MSG를 사용한다면 요리 본연의 맛과 더불어 감칠맛 또한 느낄 수 있는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길 수 있을 테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어머니들에게도, 시골 큰댁의 할머니들에게도 오랜 세월 ‘미원’은 부엌의 필수품이나 다름없었다.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은 단순히 MSG가 있냐 없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아득한 어머니의 손맛, 할머니의 구수한 시골 밥상을 그리워하는 것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식구들을 위해 직접 싱싱한 재료를 고르고 긴 시간 요리를 마다 않는 이들의 정성 때문일 것이다.